임상로그/🏥6년차로그

지난 5년을 되돌아보며(2편 2년차에 온 큰 시련, 1형 당뇨)

조하뚜 2021. 12. 14. 10:45

1년이 지나자 일은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있었으나,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선배들은 여전히 많았다.
눈칫밥을 먹으며 배불러 그런지 병원에서는 밥을 거의 먹지 않고 일했다.
퇴근길에는 초코우유를 사서 집에 갔고 그게 내 주식이었다.
우유니까 그래도 음료수보다는 건강하겠거니~ 생각하면서 매 끼니를 대신했다.
살이 점점 빠졌다. 사실 먹는게 없으니 이상하지도 않았다.
3개월 만에 10킬로가 빠졌고 그 당시에는 "너무 빠지면 결핵으로 의심받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병원답다.
당뇨의 3대 증상은 다갈, 다뇨, 다식인데 내게는 다식은 없었다.
다갈과 다뇨는 있었는데, 사실 두 개는 이어지는 거라 '많이 마시니까 화장실도 많이 가겠지'싶었다.
내게 문제가 있다는 건 알고있었고 다만 '곧' 외래를 봐야지 하고 있었다.
왜냐면 어느정도 목이 마른 게 아니라 정말 너무너무너무 목이 마르다. 병적으로.
너무 많이 마신다고 혼내셨던 선생님도 두분 계셨는데, 나중에 조금은 미안하셨을까..? 그 분들 입장도 이해가 가는게, 새파란 신규가 물 마신다고 간호사실에 계속 가는게 예뻐보이지는 않았을 거다.
먹지 않았던 이유 중에는 nausea(오심) 증상도 있었는데, 많이 심하지는 않았다. 그냥 참았던 걸지도..

2018년 9월 울렁거리고 속이 불편했지만 데이 근무를 마쳤다.
내가 좋아하던 윗년차 선배 두 명과 함께 일하는 날이었다. 끝나고 병원 앞 중식집에 가서 짬뽕과 탕수육을 함께 먹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정규 건강검진 결과를 오늘 받았는데, 공복혈당이 300이야."라고 말했고 선생님들은 "당뇨여 당뇨~"하며 웃고 넘기셨다.
식사를 하고 작별 인사를 했고 집으로 들어갔다가(도보 5분 걸렸다.) 다시 바로 나와서 우리 병원 응급실에 갔다.
내 발로 걸어서.
어떻게 왔냐는 초기 평가 질문에,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들에게 환자 1명이 추가되는 것을 정말 미안해하며, 내가 겪고 있는 증상과 오늘 받은 건강검진 결과를 대답했다. 처음에는 C cell bed로 안내받았다.
기본 혈액검사를 나가면서 혈당검사를 나갔는데 혈당검사의 경우 '병동내 검사'이기 때문에 바로 결과를 알 수 있다.
high가 나왔다. 우리 병원에서는 600mg/dl 이상은 측정되지 않고 high로 표시된다.
속효성 인슐린인 노보래피드를 bolus 주입 후 F/U했으나 계속 high가 측정됐다.
CT를 위해 금식처방이 내려졌고, 소변검사를 해오라고 하셨다.
어느 정도 연가시처럼 물이 먹고 싶었냐면, 소변검사를 하러 가서 화장실 세면대 물을 마시고 싶었다.
정말 꾹 참고 돌아왔다.
EM 레지던트와 int 초진을 봤고 r/o DKA였기 때문에 플라즈마 full drop IV 투여하고 있었다.
MICU에 일하는 대학 동기에게 연락을 했다. 동기 회식 중이었는데, 바로 와줬다.
ICU 입실 필수품인 성인 기저귀를 사들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과로 전과되며 A cell로 옮겨졌고 중환자실 입실 동의서, C-line insertion 동의서를 작성했다.
소변검사에서 케톤체가 많이 나왔겠지.. 나중에 lab을 확인하니 전형적인 DKA 였다.

그렇게 MICU 친구 '튤립양'과 함께 MICU에 입실했다. 간호 초진 기록을 튤립 양과 또 다른 ICU친구가 함께 작성했다.
ICU에 있는 동안 정말 병원에서 많은 배려를 해주셨다. ICU 입실환자는 foley insertion을 하는 게 루틴이지만 내 의사를 존중해주셔서 꽂지 않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1형 당뇨' 확진인 상태는 아니었다. 왜냐면 1형 당뇨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췌장 베타 cell을 공격하는 항체가 있는지 검사를 하는데 결과가 나오려면 5일 정도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미약한 희망이 있었다.
'일시적으로 몸이 안 좋을 수 있지.. 괜찮아질 거야..' 하며..
ER에서 fluid를 통해 전해질을 교정하자, 거짓말처럼 물이 전혀 먹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물에서 해방됐다.
금식인 상태로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는데 너무 지루하고 너무 배고팠다.
ICU 아침으로 나오는 참치김밥을 달라고 친구에게 요구했으나, 참 간호사인 친구는 안 주고 놀렸다.^^
그리고 할게 잠자는 거밖에 없어서 하루 종일 잠을 잤는데 갈 때마다 내가 자고 있다며 친구가 신기해했다.
알고 보니 친구는 내가 아픈 게 속상해서 집에 가서 울었다고 한다. 내 앞에서는 놀리기만 하고 말이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금식하는 게 별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 어렵나 싶었다.
이틀간 굶고 드디어 점심부터 식사를 주겠다고 담당 레지던트가 아침 회진 때 말하고 갔다.
할게 그거 기다리는 거뿐이라서 계속 기다렸다. 드디어! 밥!
하지만 임상 경과가 좋지 않아 계속 금식을 해야 했고 밥을 계속 기다리는 내게 그 끔찍한 소식을 전해주는 걸 모두가 미뤘다고 한다. "니가 해.. 난 못 말해.." 하며..

ICU 입실 3일 차에 내분비내과 병동으로 전동 하게 되었다.
자대 병원이라 그런지 그 병동에도 대학 동기가 두 명 있었다. 동기가 "무슨 일이야~"하며 날 반겨줬다.
그건 그렇고 침대에서 해방이라니... 너무 좋아서 계속 쏘다녔다.
당뇨 진단을 받게 되면 루틴으로 당뇨교육을 받게 되고 관련 합병증 검사들을 진행하게 된다.
다행히 나는 합병증은 없었다.

며칠이 지나고 전공의 프리라운딩 때 자가항체 양성으로 1형 당뇨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펑펑 울었다.
그다음 교수님+전공의 회진 때 내 부어있는 눈을 보시고는 동공 지진하며 서둘러 나가셨다.
그때는 '아닐 거야. 맞다 해도 이겨낼 수 있을 거야'하며 현실 부정도 했다.
인터넷으로 1형 당뇨를 이겨낸 사람들을 검색했다.
검색해보면 치료원에 입소해하면 이겨낼 수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귀뚜라미 분말을 식사 대신 먹으면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아픈 사람들한테 정말 못할 짓인 거 같다. 언젠가는 반성하셨으면 좋겠다.
췌장 베타세포는 재생되지 않는다고 학교에서 배웠다. 회복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지만, 1형 당뇨의 경우는 자가항체가 결국 회복된 베타세포를 또다시 파괴한다.

하지만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었고 어떤 박사가 개발했다는 비싼 귀뚜라미 분말을 1년간 먹었고 결론은 효과 전혀 없다. 할 말은 많지만 고소당할까 봐 조금만 얘기하자면, 식사 대신 먹으면 당이 조금만 오르기는 한다. 근데 그건 당연하다. 먹는 게 없으니까 안 오르는 거다. 일반 식사를 하면 고혈당이 있었고 판매자에게 그 문제에 대해 상의하면 '네가 한정식을 먹으니까 그렇지 한정식에 얼마나 당을 올리는 음식들이 많은데~' '그걸 먹으니까 그렇지 니 탓이네' 하며 내 탓으로 돌렸다.
그 사람 말만 들으면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귀뚜라미 분말밖에 없다. 그렇게 가스 라이팅을 하면서 사람들을 세뇌하는데, 그 카페에 가면 그 사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들일 모여있다. 1형 당뇨를 진단받은 사람들이 아니 1형 당뇨를 진단받은 어린 자녀를 둔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치료하고 싶을 테고 혹하기 쉽다고 생각한다. 이해한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하지만 잔인하게도 치료제가 있다면 대학병원에서 먼저 사용할 거다. 그런 비공식적인 루트에서가 아니고. 속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잘 관리하며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 당시 나는 친구 셋과 방콕에 가기 위해 비행기와 숙소를 모두 예약한 상태였다.(1달 전쯤 예약함) 퇴원 후 바로 출발하면 됐는데 ICU친구가 가면 간호부에 고발하겠다고 했다. 걱정해서 그랬던 거겠지..
뭐 결론적으로는 안 간 게 잘한 선택이었는데, 왜냐면 며칠 후 나는 다시 응급실에 오게 된다.. 만성담낭염으로..
또다시 외과병동에 입원하게 된다..^^

이 기간 동안 너무 절망적이고 슬펐지만 한편으로는 참 감사한 시간이었다.
그 당시 혼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친구들과 친척 지인들이 계속 병문안을 왔다. 내가 슬퍼할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말이다. 인생을 헛산 건 아니다 싶었다.

그 이후에 1형 당뇨를 진단받고 3교대를 하며 일하게 된 이야기는 3편에 기술해보도록 하겠다.
이 역시 할 말이 많을 듯하다.